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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소중함

이경애 나이 가난 재혼 사별 떡볶이 사업 실패 파란만장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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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애 나이 가족 재혼 사별 떡볶이 사업 실패 파란만장 인생

 

한 시대를 이끌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짓게 했던 그녀의 당당함과 유쾌한 매력

 

지독했던 가난으로 홀로 생계를 이끌면서도 재혼 사별 사업실패까지 겪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그녀의 모든 것

 

이경애 나이 가족 재혼 사별 떡볶이 사업 실패 파란만장 인생

 

 

 

 

이경애 코미디언 자신감 개그우먼 리즈

수많은 시련을 겪으면서도 잃지 않았던 자신감과 여유

 

38년 차 코미디언 이경애 입니다.

 

 

 

1984년, 열아홉의 나이로 한국의 채플린이란 찬사를 받으며 KBS 개그콘테스트 대상을 수상했던 그녀는 못난이 개그우먼 캐릭터를 만들어 ‘괜찮아유’, ‘넌 내 거야’ 등의 유행어를 연달아 히트시키며 80년대 90년대 개그 전성기를 이끌었던 아이콘으로 올라섰습니다.

 

 

 

1984년 제2회 KBS 개그콘테스트 대상을 시작으로 한국방송대상 여자 코미디언 상. MBC 코미디 대상 여자 최우수상 수상으로 증명해냈던 자신감

 

 

 

그렇게 최선을 다했던 열정과 노력으로 정상의 자리에 올랐던 그녀

 

개그우먼 이경애 입니다.

 

 

 

 

이경애 나이 학력 프로필

개그 전성기를 이끌었던 아이콘 이경애

 

 

 

이경애 서울 출신 고향 1964년 11월 18일 생으로 2021년 기준 이경애 나이 58살 입니다.

 

 

 

깊이있는 연기에 대한 갈증으로 놓지 않았던 배움의 길 이경애 학력 송곡여자고등학교 졸업 동덕여자대학교 방송연예학과 학사 졸업


1984년 KBS 개그콘테스트 대상으로 데뷔 이후 우리 가슴속에 기분 좋은 추억을 선물했던 그녀

 

이경애 입니다.

 

 

 

 

이경애 가난 가정폭력 불화

거침없이 당당한 행보 유쾌한 매력으로 어린 나이 데뷔 이후 성공을 이뤄냈던 것으로 기억되는 그녀

 

내성적이고 여린 소녀였던 이경애가 개그우먼이 되기로 결심했던 것도 돈을 많이 벌어 가정을 지키고 싶었다는 고백...

 

 

 

그녀에게는 지독했던 가난을 시작으로 어린나이 감당하기 어려웠을 시련들이 가득했었습니다.


이경애 언니 이지윤 씨는 

 

"어렸을 때 경애는 말도 없고 소심한 아이였어요. 방송을 할 만한 아이가 아니었죠. 그런데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어머니가 삶을 포기하려고 하셨어요. 그때 경애는 부모님에게도 의지할 수 없었죠. 가족들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혼자 다 짊어지는 가장으로 바뀌더라고요"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경애 역시

 

"어렸을 때 저는 조급했어요. 빨리 성공해야 하는데, 돈 벌어야 하는데.. 그때부터 죽기 살기로 ‘내 꿈은 연예인이다, 연예인이 되어서 빨리 돈 벌어야 한다’ 하고 생각했어요. 우리 엄마 살리려면 빨리 돈 벌 방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던 거죠"라고 힘들었던 당시 상황을 고백했습니다.

 

“원래 꿈은 판사였어요. 머리도 나쁘지 않아서 가정 형편만 괜찮았다면 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아빠가 술을 좋아해서 술로 월급을 탕진했죠. 엄마는 생계를 위해 몰래 행상을 나갔었고... 그러다 어느날 아빠가 술을 마시고 엄마를 때렸는데 엄마 얼굴에 구멍이 났고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피가 철철 났었어요. 그 때 아빠한테 욕을 했고 저도 맞아서 정신을 잃기도 했었어요”

 

 


“이후 엄마가 극단적인 선택을 5번이나 했어요. 다행히 제가 5번 다 살려냈었는데...이후에 저는 18살에 집을 나와 빨리 성공해야겠다는 간절함으로 돈을 벌었어요”

 

 

 

"겨울에 세차장 아르바이트도 해봤어요.병원에서 시신을 닦아주는 아르바이트가 하루에 7만원이라는 소리에 '이 집안의 가장은 나다'란 생각을 했고 안 해본 일이 없어요."

 

데뷔 이후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스타로 올라섰던 그녀였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힘들게 벌었던 이경애 수익을 주식으로 탕진했습니다.


 

이경애 가족 재혼 사별

이경애는 과거 첫 번째 전남편과 결혼했으나 이혼했고, 이후 따뜻한 마음으로 그간의 아픔들을 감싸줬던 14살 나이 차이가 나는 두 번째 남편과 2000년 재혼했습니다. 

 

 

 

행복한 결혼과 가족을 이루기 위해 임신 불능 이었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마흔이 넘은 나이에 인공수정을 결심하고 어렵게 딸 김희서를 얻으며 꿈을 이뤘습니다.

 

 

 

하지만 이경애 남편 김용선 씨는 만성신부전증으로 간이식 수술까지 받았지만 상태가 악화되어 2013년 64살의 나이에 결국 하늘로 떠났습니다.

 

이경애 어묵 떡볶이 사업 실패

홀로 딸을 키워내며 딸을 위해 사업을 시작했던 이경애

 

딸과 함께 정말 열심히 했었던 사업들은 상승세를 보이며 사업 확장을 이뤄내며 성공을 향했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19 상황이 계속되며 힘들게 이뤄냈던 사업 역시 내려놓게 되었다는 이경애

 

 

 

" 우리 딸이 엄마 혼자 힘들다고 알바 해주고, 계속 도와줬었는데..."
 

"어묵 공장을 했었어요. 또 즉석 떡볶이 소스를 개발해서 반응이 좋았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접었습니다. 점포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를 접었어요."

 

나아지지 않는 상황 때문에 최근 어묵, 떡볶이를 비롯해 이자카야 까지 영업을 중단했다고 밝혀 안타까움을 주고 있습니다.

 

 

 

 

 

엄마 이경애 딸 김희서 사랑

하나밖에 없는 딸

 

 

 

하지만  기상 알람이 울리면 스스로 일어나 아침을 챙겨 먹고 학교에 가는 딸 희서. 게다가 청소도 요리도 엄마 이경애는 뒤에서 감독만 할 뿐, 모두 희서의 몫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딸이지만 이를 악물고 딸을 강하게 키웠다는 이경애

 

 

 

 "자식이라는 거 한 번 낳아보고 싶다’ 해서 저랑 똑같은 아이가 나왔는데, 얼마나 귀하고 예쁘겠어요. 그런데도 내가 막 하는 이유는, 그 아이가 나에게 너무 의지하면 나중에 희서 혼자 남았을 때 어떻게 살아갈까 싶어서예요. 나는 우리 엄마 돌아가신 게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거든요. 희서한테 그런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아토피가 심했던 딸을 위해 전원으로 이사했던 마음

 

코로나19 여파로 가게를 폐업한 후, 식량이 사라질 걱정에 딸을 가장 먼저 걱정했었던 마음

 

 “‘나는 괜찮은데 우리 딸 먹을 게 없어지면 어쩌지?’ 하는 공포가 왔어요. 나는 안 먹어도 우리 딸은 지켜야 하니까. 쌀부터 샀어요”

 

 

애틋한 마음으로 사랑 가득한 마음으로 딸을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그녀

 

엄마 이경애 입니다.

 

 

앞으로는 행복만 가득하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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