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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소중함

김환기 화백 우주 그림 부인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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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화백 우주 그림 부인 모든 것

 
끊임없이 자신의 예술을 고뇌하고 도전했던 삶의 여정


화가인 동시에 곱고 섬세함을 펼쳐냈던 시인 같은 감성


한국의 아름다움을 시작으로 한 점, 선, 면 순수 근원으로의 회귀


역대 최고가를 스스로 경신해내는 독보적인 자신감


전 세계 추상미술 거장


김환기 화백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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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화백 멈추지 않았던 도전

최고라는 한계에 안주하지 않는 것


‘부수는 용기가 필요했다’


사물의 형태는 사라지고 가장 순수한 조형 형태인 점, 선, 면으로 채워낸 작품


김환기 입니다.

 


성공으로의 삶을 내려놓고 향했던 세계 미술의 중심 파리


이른 빛이 스며드는 아침부터


적막한 고요함이 가득한 자정이 넘도록


한치 앞을 알수 없던 기약없던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그의 붓

 


닿고 싶었지만 닿을 수 없었던 고뇌의 끝


드디어 이뤄낸 자신만의 강렬한 시그니처

 
“예술이란 강렬한 민족의 노래인 거 같다. 나는 우리나라를 떠나봄으로써 더 많은 우리나라를 알았고, 그것을 표현했으며 또 생각했다.”


김환기 화백 작품을 상징하는 푸른 주조 색감은 고향의 푸른 하늘 그리고 푸른 바다였습니다.

 

 


"저 단순한 구도, 저 미묘한 푸른 빛깔, 이것이 나만이 할 수 있는 세계이며 일일 거야.”


한국인 최초로 파리에서 6번의 개인전을 여는 성과를 이뤄낸 김환기


1963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명예상 수상을 계기로 자신감을 얻은 이후 또 한번의 도전


다음 여정의 목적지는 현대 미술 중심지인 뉴욕


뉴욕으로 향했던 당시 김환기 나이 51세 였습니다.

 

 


김환기 화백 프로필 

멈추지 않는 도전 김환기 화백 호(號)는 수화(樹話)


김환기 화백 1913년 4월 3일 ~ 1974년 7월 25일 고향 전라남도 신안군 입니다.


김환기 화백 학력 일본 니혼 대학교 대학원 미술학 석사


오직 작품을 향한 열정 신념으로 평생을 다했던 최선


전 세계 추상미술 거장 김환기 화백 입니다.

 


1936년 일본 니혼대학 미술학부 및 동 대학원 미술학 석사


1946년-1949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역임


1952년 홍익대학교 미술학부 교수 역임


1954년 예술원 회원


1956년 한국인 최초 프랑스 파리·니스·브뤼셀 개인전.

 

1959년 귀국 이후 홍익대학교 교수.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역임


1963년 제7회 상파울로 비엔날레 한국 대표 / 명예상 수상.


1964년 뉴욕행 이후 뉴욕에 체류하며 작품 활동


1974년  작품 활동 중 뉴욕에서 사망. 김환기 화백 향년 62세.

 

 


김환기 화백 그림 작품 세계

“ 나는 남방의 따사로운 섬에서 나고, 섬에서 자랐다. "


" 고향 우리 집 문간을 나서면 바다 건너 동쪽으로 목포 유달산이 보인다."


" 그저 꿈같은 섬이요, 꿈속 같은 내 고향이다.”

 


1913년 신안 앞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 안좌도


대지주였던 아버지 김상현의 외아들로 태어났던 김환기.


넋을 놓고 그림에 몰두하게 했던 아름다운 고향 풍경은

 

김환기 작품의 감성이 되었습니다.

 


1933년 대학시절 일본 추상미술의 선구자들과 교류하며 추상화에 사로잡힌 김환기.


그의 초기작 <론도>(1938)

 

당시 풍경화, 인물화 위주였던 한국 화단에서는 볼 수 없었던 곡선과 직선, 기하학적 형태로 구상한 작품으로 우리나라 추상회화의 선구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김환기는 문인화가라 해도 될 만큼 글을 잘 썼고 상당량의 일기와 편지를 남겼습니다. 


그 일기 중 132억 판매가를 기록한 작품  ‘우주’에 관한 기록.


1971년 3월 23일  “점화 계속. 재미나는 일을 생각해 냈다. 실(絲)로 악기처럼 만든다”


1971년 4월 5일  "100″×50″시작” 기록


1971년 4월 10일 "100″×50″완성” 기록


1971년 4월 13일 "100″×50″완성 기록


총 254×127㎝인, ‘우주’의 한쪽 폭을 4월 5일 시작한 이후 4월 10일 완성


나머지 한쪽 폭을 완성한 4월 13일

 


"미묘한 번짐이 있어 아련한 점이 각각 동심원"


"닮은 듯 다른 두 폭의 어우러짐은 빛나는 별무리, 눈동자 같고, 그리운 사람의 얼굴 같기도 하다." 


“내가 그리는 선線, 하늘 끝에 더 갔을까. 내가 찍은 점點,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눈을 감으면 환히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강산江山….” 

 

김환기 화백 추상미술 세계의 거장

세계 추상미술의 중심


세계의 거장 김환기 화백


" 구상작업에서 보여준 세련된 형태 감각은 가히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


" 추상 작업에서도 색채 대비와 조화, 구성이 탁월하고,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이미지가 우아하다"


 " 김환기의 작품은 자연에 완전히 얽매여 있지 않다.동시에 자연과 분리된 인공 언어도 아니다. 자연과 언어 그 중간 어디에서 매 순간 균형을 잡기 위해 애쓰는 긴장감이 있다" 

 


김환기 화백 최고 그림 우주 작품가

국내 미술 역대 최고 작품가를 스스로 경신해내는 김환기 화백 그리고 그의 그림 작품


연간 4,000억원 대로 추산되는 한국 미술시장에서 절반을 차지하는 김환기 작품 경매총액 2,000억원

 


국내 미술경매 최고가인 동시에 한국미술품으로는 최초의 100억원 돌파를 기록한 김환기 그림 작품 '우주'


김환기 화백 전성기 그림 작품이자 최대 크기의 전면 점화(點畵)


1971년작 ‘05-Ⅳ-71 #200’, 일명 ‘우주(Universe)’


2019년 23일 크리스티 홍콩 ‘20세기와 동시대미술 이브닝세일’에서 8,800만 홍콩달러에 낙찰.


김환기 작품 우주 경매 낙찰가 한화 기준 약 132억 5,000만원 이었습니다.

 


2018년 서울옥션 홍콩경매 김환기 작품  ‘3-Ⅱ-72 #220’이 세운 최고가 낙찰 기록 85억3,000만원


1년 반 만에 작품 최고가를 스스로 경신한 김환기 화백 입니다. 

 

 


김환기 부인 김향안 환기 재단 환기 미술관

김환기를 ‘가장 비싸게 팔리는 한국 근ㆍ현대작가’로 승화해낸 김환기 부인 김향안


1974년 김환기 타계 이후 혼신의 힘을 다해 그의 예술세계를 정리하고 그 가치를 구축해냈던 김환기 부인 김향안


1989년 환기재단 설립


1992년 환기미술관 설립


이후 재단과 미술관에 더한 철저한 관리를 통해 구축해낸 견고하고 단단한 김환기 브랜드


김환기 평전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쓴 이충렬 작가는

 

“김환기에 대한 김향안의 사랑과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내조는 김환기 예술을 꽃피우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김환기 화백 우주 그림 부인 모든 것

 
끊임없이 자신의 예술을 고뇌하고 도전했던 삶의 여정


화가인 동시에 곱고 섬세함을 펼쳐냈던 시인 같은 감성


한국의 아름다움을 시작으로 한 점, 선, 면 순수 근원으로의 회귀


역대 최고가를 스스로 경신해내는 독보적인 자신감


전 세계 추상미술 거장


김환기 화백 입니다.

 

 

김환기 화백 멈추지 않았던 도전. 김환기 화백 프로필. 김환기 화백 그림 작품 세계. 김환기 화백 추상미술 세계의 거장. 김환기 화백 최고 그림 우주 작품가. 김환기 부인 김향안 환기 재단 환기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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